가을입니다
그는 차츰 자신을 줄여갔다.
꽃이 떨어진 후의 꽃나무처럼
침묵으로 몸을 줄였다.
하나의 빈 그릇으로
세상을 흘러갔다.
빈 등잔에는 하늘의 기름만 고였다.
하늘에 달이 가듯
세상에 선연히 떠서
그는 홀로 걸어갔다.
-이성선 시인의 詩<求道>
새해 첫날에 가졌던 당신의 첫마음,
지금 어디에 있나요?
지금 어떻게 변해 있는지요?
세상에 대하여 할 말을 줄였나요?
자신에 대하여 할 말을 줄였나요?
언제나 첫날처럼,
신선한 마음으로..
기름진 마음으로 세상에 선연히 떠서
홀로 걸어가야 합니다.
어느새, 가을입니다.
꽃 떨어진 꽃자리처럼 쓸쓸한
침묵만 늘어가는
가을입니다.
텅 빈 오지 항아리에 와 있는,
쓰다 만 엽서 틀린 맞춤법 속에도 와 있는,
흑백 사진 속
잊혀진 아버지 얼굴 위에도 와 있는,
빨간 함석지붕과 들풀과
늙은 느티나무 아래 와 있는,
가을...
침묵으로 몸을 줄이고
조용히 걸어가야 하는, 가을입니다.
-박선희 시인의 <아름다운 편지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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